하루 종일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고, 또 가꾸다가 보면 재료가 부족해질 때가 있다. 그럼 어김없이 아내와 나 누군가는 읍내에 다녀와야 한다. 이번엔 아내가 집중모드라 내가 다녀올 차례였다. 읍내의 철물점과 하나로마트에서 필요한 걸 사고, 오르막길을 따라 농막으로 올라오는데,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농막에서 나오고 있었다.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고 들어갔는데 아내가 다소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구예요? 여보."
"이 동네 반장님이시래."
"반장님?"
"응. 반장님."
"동네 반장님이 우리 농막에는 왜?"
아내의 입에서 반장이라는 말이 나올 때 직감했다. 아 반장세, 이장세를 받으러 왔구나.
"응. 반장세, 이장세 1년에 각 2만 원씩. 4만 원 내라고 하네. 근데 좀 황당하다. 어디에 쓰는 거냐고 물으니까 이건 반장이랑 이장이 그냥 나눠 갖는 거라고 하시네. 우리가 용돈 드리는 거야?"
반장세, 이장세가 뭐지?
보통 알고 있는 개념의 반장세, 이장세는 '관행'으로 내는 마을의 여러 세 중 하나다. 그런데, 그냥 갖기 위해 내라고 당당히 말하시니 당황스럽긴 했다.
도시에도 주택가에서는 반장세를 걷는 곳들이 아직도 있다고 들었다. 시골은 아주 흔하게, 당연하게 걷고 있다.
시골마을에서는 이장과 반장이 마을에서 하는 행사를 알리거나, 반상회를 알리거나, 유지 보수해야 할 시설물이나 도로 같은 것들을 기관에 알리고 처리하는 일들을 도맡아 하게 된다. 반장세, 이장세는 이런 수고에 고생한다며 걷어주는 수고비 같은 것이다.
근데, 이 곳에 사는 마을 주민은 반장 가구 하나, 이장 가구 하나, 그리고 주민 한 가구가 전부다.
즉, 이곳은 마을 행사도, 주변에 함께 예초나 정비할만한 곳도, 주민들끼리 반상회 할만한 사람도 없다.
다들 주말에만 오는 농막인데 반장세와 이장세를 걷는다는 게. 썩 납득이 가진 않았다.
게다가 방문한 반장님은 우리 농막 옆에 있는 창고도 농막으로 보고, 진짜 창고인지 들여다보고 갔단다.
농막인데 아닌 것처럼 우리가 속이기라도 한 것인가.
아랫집 아주머니께도 내셨냐고 물어보니,
"그냥 내셔요. 알아보니, 그래도 다른 마을보다는 적게 걷는 편인 것 같더라고요. 저희도 냈어요."
당황한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듯이 답해주셨다.
"그래, 내자... 다들 내는데..."
아내는 지체 없이, 반장님의 계좌가 적힌 종이를 들고 바로 4만 원을 이체했다.
마음에 안 드는 데, 안 내면 안 되나?
반장세, 이장세 말고도 많은 텃세가 있다.
마을에 처음 전입해 오면 내는 마을세 (10~100만원 수준), 마을의 공동 수도를 사용하면 1년에 한 번씩 내는 물세(3~10만원 수준) 등 우리는 겪지 않았지만 실제로 귀농 한 분들이 겪는 텃세들이다. (괄호 안의 비용은 천차만별이니, 맞지 않을 수 있다.)
이장과 반장은 이미 일정 비용을 지원을 받고 지정이 되는 직책이다.
즉, 월급이나 일종의 수고비를 나라에서도 받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그전부터 이런 세를 내왔기 때문에 월급을 받든 말든 간에 옛날처럼 똑같이 걷는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내지 않으면 결과는 원주민과의 갈등과 사건이다.
몇몇의 블로그나 유튜브 영상만 찾아봐도 이런 일로 생긴 갈등으로, 길을 막고 불을 지르고 훼손을 시키는 등의 일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도 불안한 일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일은 고착화되긴 쉽지만, 없애는 건 그 사고를 가진 세대의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줘도 어렵다. 특히 시골에서는 도시민과 시골 주민이 겪은 시대의 속도가 다르기에 더욱 그러하다.
반장세, 이장세를 내고 나서
반장세, 이장세를 내고 나서 끝난 게 아니다.
결국 마을세(마을발전기금)까지 농막 당 30만원씩 걷어갔다.
걷어가며, 마을에서 대동회 할 때나, 주변 개선 작업 등을 할 때 활용하는 비용이고 한 번에 다 쓰는 게 아니라 잘 모아 두고 필요할 때 쓰는 거라며 설득을 했다. 농막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한참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은 모두 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솔직히, 마음에 들진 않았다. 대동회라는 축제는 코로나로 거의 진행도 못하고, 하더라도 평일에 하는데.. 주말에나 방문하는 농막 소유주들이 대동회 참여하러 휴가내고 평일에 오겠는가?
이장님도 미안했는지, 한 주가 지나서 왠 떡을 한 박스씩 나눠주고 가셨다.
"마을에서 쑥을 캐서 쑥떡을 좀 했어요. 저희가 수확한 햅쌀이랑 이 동네 쑥으로 만든 떡이니 맛있게 드세요."
마음은 참 고마웠지만,
그 이후 이장님께 도움을 받은 것은 퇴비를 농업인 기준으로 한 차례 구매할 수 있게 편의를 봐주신 것이 다였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서는, 이장도 바뀌었고 이젠 아예 아무런 정보 공유나 이야기도 없다.
얼마 전에 이웃 농막 주인분은 우리가 내는 각종 세로 혜택을 보는 게 너무 없지 않냐며 농막 주인 단톡방에 한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 방에는 반장님도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지만, 단 한 번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원래 시골이란 이런 곳'이라는 마음이 자리잡기 시작하니 되돌리거나 바꾸긴 쉽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시골에서 나만의 아방궁에 지내신다고 하더라도, 아마 마을에서 이러한 세를 받으러 오게 될 것이라는 점은 알아두시길 바란다.
너무 관행같고 내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관점을 달리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이해가 아니라 수용.
그리고 그 커뮤니티에 흡수되고 나서 조금씩 바꿔나가는 게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오랜 기간 굳은 관습은 그 안에서 밖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밖에서 안으로 깨면서 들어가는 건 그들에겐 위협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래.. 텃세는 우리가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도 관리비에 포함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자. 그 속에는 경로당에서 어버이날 행사나 연말 행사하는 비용도 책정이 되고, 아파트 조경관리나 청소, 반상회 다과비도 포함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용을 가지고 관리비로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비용은 아니지만 아파트 커뮤니티에 필요한 비용이니까.
거주공간이 아닌 농막에 걷는 건 이해하긴 어렵지만, 어쩔 수가 없다. 주말에는 거주하는 농막들이 많으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동네들도 있다.
그러니 애초에 시작할 때 동네 이장님을 만나보거나, 주변에 이미 들어와 있는 농막들이 있다면 농막 주인을 찾아가 마을 사정에 대해서 확인해보는 과정은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몇 만원 내는 관행이 너무 싫다고 피하다 보면 정말 원하는 땅과 동네를 놓치거나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각자에게 맞는 판단을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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