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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야기/1. 농막 3년차 노동 일기

22년 4월 30일

by 팰럿Pallet 2022. 5. 1.

4월은 사진으로 찍으면 크게 다를 게 없고, 그저 몸이 바쁜 달이다.



아내는 지난 3월부터 집에서 씨앗으로 모종을 만들었다.
만든 모종의 수는 꽤 많은데, 나는 아내가 말해줄 때마다 '아, 그렇군!'하고 대답을 하고는
뒤돌아서면 '이게 뭐였더라?' 하며 다시 아내를 부른다.
아내는 내가 꽤 귀찮을 거다. 그래도 아이 대하듯이 이것 토마토고, 이건 수박이고, 이건 옥수수고 하면서 하나하나 잘 설명해준다.
그렇게 집에서 키운 아가 모종들을 가득 싣고 양평으로 떠난다.

양평은 그동안 비도 오고, 다시 추워지기도 하고, 따뜻해지고를 반복했다.
지난 번만 해도 잔뜩 상기되었던 땅들이 이젠 모두 긴장이 풀린 상태다.
좀 늦었지만, 농협에 가서 유기질비료(사실상 소똥)를 6포대 사 왔다.



우리는 나무로 틀 밭을 만들어 두었고, 이 틀이 10개 정도 된다.
그리고 겨울 내 잘 썩혀진 콘포스트가 가득 쌓여있다.
그래서 유기질비료는 6포대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뿌려보니 1포대 정도가 남았다.)

완두콩이 영 비실하다

완두콩은 심고 나서 지주대나 줄을 안 해줬더니 바닥을 다 쓸고 다닌다.
그래서, 아내가 고추 끈으로 콩줄기들이 일어설 수 있게 재활치료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대파

대파는 모종을 샀다. 모종을 사러 농협에 갔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파 모종 한 판이 100주였는데, 반 판씩도 팔았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어떤 아주머니가 1판을 구입하고 있었다. 한 판에 100주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같이 오신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절반씩도 팔아요. 50개만 구입도 가능해요."
라고 말해 주었더니,

"아 그래요? 그럼 저랑 절반씩 나눌래요? 아, 이미 결제하셨구나.."

"네, 저희는 이미 샀어요."

"난 이게 대파인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는 옥수수 모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옥수수 모종을 대파 모종으로 착각하시고 덜컥 구매하신 것으로 보였다.

아주머니 두 분이서 와서 구매하고 계셨는데, 모습은 영락없는 농사꾼이었지만, 실상은 초보 도시농부였다.
우린 좀 더 초보티를 벗어났다고, 의기양양하게 대파 모종 반 판을 들고 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심었던 대파 사진이 위에 사진이다. 이번 주에는 비를 맞아서 싱싱하게 일어서서 봄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재작년이었던 것 같은데, 아내가 아스파라거스 씨앗을 샀다. 그래서 작은 화분에 씨를 뿌려두고 2년간 키웠더니 이렇게 가늘고 비실한 아스파라거스가 작은 화분을 가득 매웠다.

이 뿌리 서로 엉킨 것 좀 보게..
서로 엉켜있는 아스파라거스들을 찢어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아래와 같이 심었는데, 과연 잘 살아나 줄지 의문이다.

집 베란다에서 2년 정도 키운 아스파라거스

한 주가 지나서 돌아보니, 잎은 거의 다 죽어 있었다. 뿌리는 살아있겠거니 해서 비실하게 자란 줄기는 좀 다듬어 주었다.

수세미 삼인조

수세미도 심어주었다. 이 녀석 작년에도 잘 자라서, 설거지할 때 수세미로 잘 활용했기 때문에 올해도 어김없이 심어준다.

두메산골에서 자란다하여, 두메부추

예전에 농막 이웃이 토종 부추라면서, '두메부추'를 5개 정도 나눔 해 주셨었다.
그 두메부추를 1년 동안 키워서 잘 먹고, 또 뿌리로 새끼를 친 녀석들을 잘 키웠더니 이만큼이나 많아졌다.
(두메부추는 뿌리로 퍼지는데, 여러 해 동안 잘 크고 강하다. 지금은 이렇게 비실해 보여도, 새로운 땅에 적응도 빠르고 거름을 조금만 줘도 잘 자란다.)
이 녀석들도 옮겨서 다시 심어주었다. 제 살던 땅이 아니어서 한 동안은 몸살을 앓겠지만, 금세 다시 일어서겠지.

복분자랑 아스틸베(노루오줌)라는 꽃

오른쪽에 두 그루의 풀 같은 것이... 이게 무슨 꽃인데, 아내가 말해줬는데 잊어버렸다. (물어봤는데 '아스틸베'라고 한단다)
항상 이런 식이다. 자꾸 잊어버린다.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
왼쪽에 작은 풀 같은 것은 복분자다. 원래 묘목 같은 걸 사서 작년에 거의 죽여놓고, 하나만 살아남아서 화단으로 옮겨 심었다.
올해는 다행히 잎도 나온다. 내년에는 복분자 몇 개는 따 먹을 수 있겠지.

앵두나무가 작년에는 열매가 한 20개 내외로 열렸나. 너무 적어서 아쉬웠는데, 올해는 100여 개는 열린 것 같다. 좀 지나면 맛있는 앵두를 따먹을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된다.
포도는 포기했다. 양평에서 포도를 심고 가꾸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이웃들도 포도나무를 키우길래 따라 사 보았는데, 너무 어린 포도나무를 사서일까, 아니면 양분이 부족해서 일까,
살긴 살아났지만, 열매가 맺힐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집으로 다시 데리고 왔다.
포도는 따뜻하고 햇빛 잘 드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 키워야겠다.

대신, 아내는 복숭아나무를 한 그루 샀다.
이미 꽃도 달려있어서, 기대를 해 볼 수 있으려나.

이제 양평에서의 초보 농사 3년 차인데,
첫 해는 너무 늦게 시작을 하기도 했고, 땅의 상태도 좋지 않았으니
제대로 된 텃밭농사는 작년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보니까, 확실히 한 해 땅에 자리를 잡은 딸기, 과실수, 꽃들은 자라는 게 다르다.
이제야 땅에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우리처럼.

올해 농사는 힘을 주지도 않고, 욕심도 부리지 않고
살살, 그리고 노동의 여유도 즐기면서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해보니,
주변 경치도, 하루의 일과도 참 평온하다.


아, 더 늦기 전에 새집을 만들어 볼까?

이번 주에는 딸아이와 함께 새집을 완성했다. 완성한 새집은 농막 뒤, 숲에 있는 나무에 걸어주었다.
근데, 이렇게 사진을 찍고 보니 중요한 걸 빼먹었다는 걸 알았다!
입구 밑에 새들이 들어갈 수 있는 나무 지지대를 안 만들었다..
아마도 새들이 이사 오진 않을 것 같다. 구멍까지는 보겠지만 발로 뭐 잡을 게 있어야 안으로 들어갈 게 아니야..
다음 주에는 다시 떼와서 밑에 나무 가지를 달아줘야겠다.
이렇게 뭘 해도 어설프다.

어설프지만, 어설픔을 엮어가며 올해도 조금씩 무르익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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