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7
농막 주변 정비 세번째날
데크에 조명달고, 밭 정비하기
몸의 이곳저곳이 잔뜩 쑤신다. 주말 햇빛에 그을린 피부는 파리가 지나간 자리처럼 간지럽다. 손도 발도 뜨겁게 퉁퉁 붓는다. 손가락 마디마디는 끼익 끼익. 오래된 로봇의 관절처럼 매우 부자연스럽다. 너무 졸리지만, 막상 잠들면 피곤하고 아파서 잠 속으로 푹 빠져들지 못한다.
하지만, 수요일 즈음이 되면 고통은 단기 기억이 되어 스러져버린다. 그리고 또 설렘과 흥분 속에 금요일 저녁을 기다린다. 금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면 가득한 짐과 들뜬 마음이 트렁크에 실리고, 무거워서 엑셀도 매끄럽지 않은 차를 타고 우리 가족은 양평으로 떠난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1시간 30분의 드라이브 시간이 체감으로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주변은 칠흑처럼 어둡고 가로등도 몇 개 없는 길을 지나면 보름달의 밝은 빛과 무수한 별빛이 반겨주는 우리의 농막에 도착한다.
필요한 짐을 몇 가지 내려 농막 안에 가져다 둔다. 농막 안은 몰래몰래 힘들게 들어온 작은 곤충들이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잠들어 있다. 그냥 잠든 건 아니고 포근한 농막 안에 육신을 두고, 그 편안한 마음을 간직한 채 이미 천국에 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녀석들의 영면의 길에 우린 청소기로 소란을 피우며 그들의 마른 육신이 원래 지내던 자연으로 털어준다. 안녕, 잘 가라. 그리고 우리도 세 번째 날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잠든다.
실제로는 세 번째 날은 아니지만, 농막 갖추기 세 번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도시에서의 아침은 늦잠을 잘 때도 있겠지만, 이 곳은 다르다. 새벽 5시에서 6시가 되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고, 아내도 그 시간이면 일어나서 일할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그 시간부터 바로 일하는 건 아니다. 커피 한 잔을 타들고 스산한 새벽의 공기와 기온을 느끼며 농막과 텃밭 주변 한 바퀴를 돈다. 그리고 오늘 할 일에 대해서 아내와 이야길 나누고, 아침을 준비한다.
아직, 딸아이는 자고 있다. 딸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아내와 난 아침을 챙겨 먹고,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를 켠다는 것은 오늘의 할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다. 아침 시간의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 정적의 소리에 거슬리지 않게 하고 싶다. 그래서 라디오 채널은 93.1 KBS 클래식 FM이다. 클래식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에 어울리는 음악은 무엇을 시작하고 유지하는데 꽤 큰 역할을 한다.
이번 주에 할 일은 크게 3가지이다.
- 데크 주변 조명 설치하기
- 나무 틀밭 위치 정하고, 텃밭 정리하기
- 울타리 주변에 사철나무 심기
데크에 태양광 조명 설치하기
밤 중에 농막에 방문하면 매우 깜깜하다. 밤이니 좀 어둡긴 하겠지가 아니라, 달이 안 뜨면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렇기에,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이동하다가 자칫하면 계단을 헛디딜 수도 있고, 데크 모서리 진 곳에 부딪히기도 십상이다. 그래서 데크의 모서리 진 곳과 계단에 조명 설치가 필요하다. 물론, 위험 외에도 심미적으로 예뻐 보이는 것도 한몫한다.
주변 농막들은 이미 이런 조명들이 다양하게 설치가 되어 있는데, 가격을 알아보니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태양광 모듈이 들어간 조명은 더욱 가격이 비쌌다.
가격적인 부담도 부담이지만, 원하는 디자인을 찾기 어려워서, 찾다 찾다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주문을 하기로 했다. (알리 익스프레스는 중국의 쇼핑몰이다. 국제우체국망을 활용한 무료배송이 장점)
내가 주문한 제품은 방수 LED 태양광 벽/계단 부착형 조명인데 27.34달러에 24개를 샀으니, 개당 약 1400원꼴로 주문한 것 같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24개 중 단 1개만 불량이었다. 밤에 아주 밝진 않지만 은은한 불빛이 나름 분위기도 있고, 밤에 어둡지 않아서 좋았다.
나무 틀밭과 밭 고르기
쿠바식 나무 틀밭을 하기 위해 나무 자재를 주문했다. 비싼 방부목을 사려다가, 창고에 물류 쌓아둘 때 바닥에 깔아 두는 나무 팔레트 자재용 나무 판재를 주문하기로 했다. 오일스테인 잘해 주면 되겠지.
팔레트용 목재는 1200*75에 14T 정도 20개 들이 4박스. 그러니까 80개에 8만 원도 안 한다. 이래저래 막 쓰기 좋아 보여 넉넉히 주문했다.
제작을 하기 전에 실제 나무 틀밭이 놓일 밭 정리부터 해야 한다.
사실, 농막 가져다 놓고 제일 우선적으로 했어야 할 일이 밭 정리일 텐데... 미뤘다. 얼마나 고된 일이 될지 알았기에 미루고 미뤘는지도 모른다. 일을 끝마치고 보니 돌아보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하루 종일 이 일만 한 건 아닌데, 하루가 걸린 거니까. 하지만 정말 힘들었다. 캐도 캐도 계속 나오는 크고 작은 돌들을 보며, 이 곳의 돌이 감자였으면, 벌써 2.5톤 트럭을 가득 채울 감자를 수확했겠구나 하는 상상까지 했다.
먼저, 눈에 잘 띄는 끈으로 나무 틀밭 사이즈의 사각형을 미리 고정해 둔다. 그리고 고정해둔 틀밭 주변에 사람과 빗물 등이 지나다닐 길의 폭을 정해서 간격을 띄운다. 그리고 또 끈으로 나무 틀밭 구획을 잡는다. 반복하여서 원하는 만큼 진행을 한다.
이때, 중요한 게 있는데, 바로 구배 잡기! 장마가 지면 비가 많이 와서 땅이 전체적으로 물러져버리거나, 흘러내릴 수 있는데 그렇게 되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물길을 잘 만들어줘야 한다. 아까 말했던 사람과 빗물이 지나다니는 길을 하수구 맨홀 방향으로 얕은 경사로 잡는다. 그러면 비올 때는 빗물 길이 되고, 평소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되고, 물을 많이 줄 때는 넘치는 물이 흐르는 길이 된다. (나라고 뭐, 전문적인 지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고, 어렸을 때 시골에서 곁눈으로 본 기억을 더듬어 그렇게 했다.)
텃밭 돌 고르기와 고랑 만들기를 마무리하고도 중국과 일본의 최근 물난리를 보면서, 대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농막과 텃밭 주변에 여기저기에 물이 고이지 않고 빠질 수 있는 물길을 여러 곳 만들어 두었다. 힘들었지만 보람되었다.
울타리에 사철나무 심기
개비온 돌담에 돌을 쌓아 넣어야 하는데, 체력이 방전되었다. 제초 작업도 해야 하고, 딸아이 놀 수영장도 열어줘야 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대신 사철나무 묘목을 좀 샀다. 지난번에 삽목 했던 사철나무들은 절반은 햇볕에 타 죽었고, 절반은 살아 있지만 사람 무릎이나 허벅지 정도까지 크려면 한 해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묘목을 인터넷으로 20주 샀다. 텃밭 작업 중에 사철나무가 택배로 도착했기에, 위에 사진에서도 보면 전과 후에 개비온 담장 옆으로 나무가 있고 없고 가 보일 것이다.
암튼 튼튼한 사철나무를 심고 보니, 제법 울타리다워졌다.
길 바깥쪽 경사면에 깔아놓은 코이어 네트 사이로 잔디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내가 잔디 씨를 추가로 더 뿌렸는데, 아마 8월 정도 되면 초록으로 무성한 울타리가 될 것 같다.
항상 일에 치이듯이 주말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보면, 아쉽다. 이번 주도 작업했던 여러 곳들을 주로 눈에만 담고 사진 몇 장이 없다. 딸아이와 더 놀아주려 했지만, 오히려 더 혼자 둔 것만 같아 미안하다. 딸은 "아빠 여기서 그냥 그림 그리고, 라디오 듣고, 뒹굴거리는 게 좋아. 수영도 좋고." 하면서 아빠를 다독여 준다. 조금씩 일을 돕긴 하지만, 아직은 날이 많이 더워서 어린 딸이 뭔가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귀찮을 텐데 심부름도 잘해주고, 아빠가 힘들지 않게 같이 산책도 해 주는 딸에게 고맙다.
장마 때문에 이번 주에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가게 되면 텃밭 틀 잡고, 돌 고르는 거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이제 심을 수 있는 모종도 좀 심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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