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30
고슬고슬 잘 마른 옷과 부들부들한 수건들이 거실 한 켠에 쏟아져 있다. 여름이라, 건조기를 더 자주 사용할 수 밖엔 없는데, 건조기에서 쏟아져 나온 옷들은 갓 한 빵처럼 따뜻하고 고슬거린다. 아내가 꺼내놓은 옷과 수건을 하나씩 개다 보면 우리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낡아서 너울거리고 있는 티셔츠의 목과 팔. 티셔츠 한쪽 구석에 생긴 작은 땜빵. 얇을 대로 얇아진 오래된 수건. 닳아서 스타킹이 되어가는 양말 한 짝.
새 옷, 새 수건이라고는 잘 찾아보기도 힘든 빨래 더미를 하나씩 개키며 정리하다 보니, '참. 억척스럽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그래서 우리가 이만큼 일궈낸 거지'하는 생각이 서로 쓰담 쓰담해 주고 있다.
그런 우리 부부가 알지도 못하는 양평이라는 동네에 땅을 마련하여 가꾸고 있다. 그러니 또 어떻겠는가. 최대한 돈을 적게 들이려고 주변의 돌로 쌓아 수돗가를 만들고, 개비온 돌담을 쌓고, 정원과 텃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주변 농막들은 참 보기가 좋다. 잔디도 깔고, 대문과 울타리, 각종 외부 조명과 고급진 파티오까지. 산책할 때 오며 가며 들여다보면 별장 같은 그분들의 꾸며진 땅이 한편으로 부럽다. 부러움이 마음 아래쪽에서 올라올 때마다, '돈은 시간을 사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주말 시간을 천천히 즐기려 이 일을 시작한 거니, 자꾸 시간을 사려고 하지 말자'라고 되뇐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내 주변이 더 여유로워 보인다.
그렇다. 우리보다 늦게 시작한 다른 다른 땅의 작물과 농막들은 이미 완성형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농막은 느리다. 아마도 내 생각엔 내가 생각하는 완성에 다가가려면, 2-3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아직도 주변은 그냥 흙 밭이다. 하지만 처음에 생각한 걸 흔들지 않고, 아이를 키우듯 계절의 시작점에서 씨앗을 뿌리듯 그렇게 조금씩 진행형으로 가려고 한다.
각자의 자유로운 바쁨
양평에 가기만 하면 홀린 듯이 노동으로 하루를 채운다.
나도 나지만, 아내는 더하다. 일주일 내내 가서 어떤 작물을 심고, 무슨 일을 할지, 그래서 어떤 용품이 필요한지만 생각하는 것 같다.
양평 땅을 계약할 때는 딸과 아내와 더 자유롭게 풀어져 있자는 의도였는데, 자유롭게 각자가 하고 싶은 노동을 하고 있다.
딸내미는 농막 안에서 실컷 그림을 그리고, 라디오를 들으며 키득거리다가, 잠시 나와서 한 바퀴 돌고, 다시 농막 다락에 올라가 자기만의 놀이를 한다.
아내는 오늘도 새로운 텃밭을 일군다. 지금까지 심은 작물들도 너무 잘 자라주고 있어서, 더 노동에 물이 올랐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일하기 좋다고 일을 하고, 해가 쨍쨍하면 작물 파종 시기를 놓치면 안 되니 또 일해야 한다고 한다. 작물 정리가 끝나면 마당 끝부터 잡초를 뽑고 있고, 잡초제거도 다 했다 싶으면 돌을 고르고 있다.
나는 지난주 딸과 놀면서 이번 주에는 좀 즐기리라 다짐을 했다.
너무나도 어설픈 새집 만들기
하지만 또 각종 연장을 꺼내서 오늘은 새집을 만들었다. 새집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나 조사, 설계도면도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만들었다. 딸내미도 함께 나사못을 박는 것을 도왔고, 어설프지만 나름 그럴듯한 새집이 완성되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내가 만든 새집에는 새들이 들어올 것 같진 않다. 잠깐 설명을 하자면, 내가 지키지 않은 기본적인 조건은 아래와 같다.
- 입구 : 새집에서 새가 드나드는 구멍은 새집 아래쪽에서 2/3에 위치해야 한다. 그래야 새 둥지를 집 안에 만들고 새끼 새들이 새집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적을 테니까. 나처럼 너무 아래쪽에 문을 만들면 새끼들이 밖으로 나올 수도 있고, 더 큰 새나 맹수들이 새집을 쉽게 습격할 수도 있어서 좋지 않다.
- 입구 구멍 : 입구 구멍도 내가 원하는 새의 크기를 고려해야 한다. 너무 크거나 너무 좁게 만들면, 이 역시 새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어렵거나, 들어가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
- 입구 진입대 : 새가 날아들어서 바로 입구로 쏙 들어가면 좋겠지만, 날다가 착지할 수 있는 나뭇가지나 원형 막대가 수평으로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새의 발은 나뭇가지를 쥘 수 있게 되어 있으니, 나처럼 그냥 판재로 해서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새들이 들어올만한 새집은 다음에 다시 만들어야겠다. 이 새집은 딸아이와 함께 새집 만들기 놀이를 한 걸로 만족해야겠다.
텃밭의 오늘은?
텃밭은 한 주동안 바람과 비의 피해가 조금 있었다.
한랭사가 벗겨져서 아무 피해 없이 잘 크고 있던 무와 배추의 이파리가 일부 사라져 있었다.
그래도 당근은 별 거름도 없고, 곱지 않은 땅에서 쑥쑥 잘 자라주고 있다.
비트는 일부는 죽었고, 일부는 잘 자라고 있어서 조금 더 발아를 시켜 심기로 했다.
오이는 노랗게 탄 잎들을 일부 제거해 주었더니, 참 잘 자란다.
파는 노랗게 탄 잎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듬직하게 잘 자라고 있다.
새로 심은 쑥갓과 고수는 아주 애기 애기하다.
텃밭은 오롯이 아내의 몫이다. 나도 일부 해보고 싶었지만, 아내가 자기 즐거움 구역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난 주변 정리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오늘은 사방지 뒤편 국유지 산림과 맞닿은 우리 땅에 자란 잡초들을 제거했다. 워낙 무성히 자라서 낫질을 하던 중에 낫의 손잡이 대가 부러지는 사고까지 있었다. 다행히 다치지도 않았고, 제초 작업은 잘 끝냈다. 싼 맛에 나무로 된 가벼운 손잡이대의 낫을 샀는데, 다음엔 손잡이 부분이 철물로 된 낫으로 사야겠다.
혹시 풀이나 가는 나무를 베기 위해 낫을 산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스틸이나 단단한 재질로 된 손잡이의 낫을 구매하시길 바란다.
일을 다 끝내고 농막 내부를 청소하고 나올 때면 항상 가득한 것이 빨래 바구니다. 평일의 빨래보다 주말의 빨래는 더 진한 땀 내음으로 젖어있다. 그 냄새가 맡기 좋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내 일주일에서 가장 진하게 쏟아낸 시간이라 그런지, 빨래를 하는 마음은 더 상쾌하다. 지금은 빨래 가득히 돌아오지만, 가을 수확철이 되면 그만큼 묵직한 우리 텃밭 채소들도 함께 담아 올 수 있길 바라본다.
'첫번째 이야기 > 2. 주말농부의 초보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의 텃밭 (0) | 2022.04.08 |
---|---|
가을의 문턱에서 (0) | 2022.04.08 |
장마 속의 텃밭 걱정 (0) | 2022.04.05 |
늦은 파종. 그리고 장마 (0) | 2022.04.04 |
나무 틀밭 만들기 (0) | 2022.04.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