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4
매일 밟고 다니는 땅에 대해서 고마워한 적이 있었던가.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우리가 걷는 공간도 시골에 오면 달라진다. 그 공간이 내가 가꿀 수 있는 공간. 키워야 하는 공간이라면 더 특별해진다.
처음 양평의 토지를 계약했을 때도 가장 중요하게 보았던 것은 '땅' 그 자체였다. 밟을 수 있는 흙과 돌. 경계 말뚝으로 지정된 이만큼의 내 땅. 어렸을 적 시골 학교 운동장에서 막대기로 선을 그으며 땅따먹기를 할 때 내 땅이 조금 넓어질 때 느꼈던, 입가 실룩거리는 기쁨과 비슷할까. 그때와 견주긴 어렵겠지만 내가 가꿀 수 있는 땅이 생겼다는 것은 무척 특별하고 다른 경험임은 틀림없다.
네 번째 주말이다. 그동안 주로 한 작업은 흙을 퍼서 땅을 다지고, 돌을 고르고, 고른 돌을 쌓고, 다져진 땅에서 다시 돌을 고르는 무한 반복의 연속이었다.
지루하게 느껴질 것 같지만, 시골의 시간은 그렇지 않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내가 다듬어가는 시간은 온전하게 결과로 눈 앞에 드러난다. 땅은 더욱 정직하게 그 대답을 해 준다.
네 번째 주말이 되어서야, 텃밭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 전에도 맘을 먹었으면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농막 주변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기에 이제야 텃밭을 꾸민다.
텃밭 준비는 지난주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이번 주는 농작물을 심는 시작점이 되는 날이다.
나무 틀밭 만들기
지난주에는 밭의 구배는 잘 잡았기에, 이번 주에는 나무 틀밭을 제대로 만들었다. 팔레트용 목재로 사각틀을 만들고 모서리 진 곳에는 동네 철물점에서 'ㄱ'자 고정 철물을 사다가 목재용 피스로 고정했고, 오일스테인을 안팎으로 잘 발랐다.
처음엔 높게 2단으로 틀을 만들까 했다가, 아내와 1단으로만 설치하기로 합의를 했다. 설치를 한 뒤에는 모서리 안쪽에 각목을 박아서 비가 내려도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했다.
아내와 집중해서 하다 보니 과정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사진의 왼쪽 틀밭에 보면 풀 같은 게 몇 포기 보인다. 읍내에 나가서 소심하게 대파 10주만 사 왔는데 그걸 심은 거다. 10주에 천 원.
비료도 거름도 안 했기 때문에, 지금의 땅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우선 보고 싶었다. 어떤 분들은 작물을 어서 심으라고도 하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작물을 빨리 심는 것보다 우리 땅을 잘 아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욕심이 나서 다시 읍내에 나갔지만, 너무 늦게 나가서 모종 가게가 문을 닫았다. 이것도 운명.
나무로 만든 쿠바식 텃밭의 모양도 나름 만족스럽고, 물 빠짐 테스트도 해 봤는데 나쁘진 않아 보였다. 이번 주중에 비가 좀 많이 온다고 하니, 다음 주말에 가 보면 뭘 더 보강해야 할지, 작물이 잘 자리 잡을 만한 토질인지 더욱 잘 알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텃밭은 마무리했다.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돌담에 돌이 더 자라 있다. 그만큼, 텃밭의 돌들을 더 골랐다는 것.
이렇게 돌을 채워둘 곳이 있다 보니, 돌을 캐면서도 돌이 귀하다. 생각보다 돌을 쓸 곳이 많다.
뒷마당 꾸미기
뒷마당은 제대로 사진을 찍은 적은 없지만 내가 가장 많은 작업을 한 곳이다. 지형 자체가 푹 꺼져있고 흙이 부족했기에 보강토를 가득 담은 수레를 몇십 번 옮겼고, 그 덕에 손은 퉁퉁 붓고, 안 쓰던 근육들이 욱신 거린다.
이번 주에는 코이어 네트도 법면에 깔고, 흙이 자주 흘러내리던 물탱크 옆면에 돌을 쌓아 턱을 만들었다.
제법 윤곽을 갖췄는데, 좀 더 튼튼하게 법면 작업을 하고, 이 곳에는 과실수를 심을 예정이다. 그리고 작은 툇마루 평상도 하나 만들어서 계절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쉬는 공간을 만들어 갈까 한다.
마을 산책
이 곳에 와서, 아내와 산책을 한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만큼 땅에 파고들어 있었고, 해야 할 일을 찾기에 바빴다. 이 역시 어쩌면 도시의 습관, 직장인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이 산과 하늘과 땅의 여백처럼. 우리도 공간을 스스로에게 내어주는 시간을 보낼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참 안된다.
아내와 딸과 손을 잡고, 농막 주변부터 1킬로도 채 안 되는 마을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마을은 참 조용하고, 예뻤다. 지금은 마을 주민들(외지인일지도 모른다)이 경계하는 눈빛이지만, 이 곳의 사람들과도 더욱 가까워지고 싶다.
조용한 마을길을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직은 낯선 동네 분위기에 딸아이는 어서 농막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아내는 딸의 손을 잡고 "이제 곧 익숙해질 마을의 풍경이야."라고 말해 주었다. 익숙해지기엔 참 특별한 풍경이었다.
어쩌면. 아내와 딸과 함께 지나온 그동안의 공간과 시간들이 모두 특별한 풍경들이자, 익숙해진 추억이다. 노을을 보며 살짝 감상적인 마음이 우러나와서, 잡은 손을 더욱 꼭 잡고 농막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이 지나서
내가 이런 작업을 하는 동안, 아내는 여전히 텃밭과 화단 자리의 돌을 골라내었고, 평일에 주문 해 두었던 몇 가지 꽃과 식물들을 정성껏 심었다. 꽃을 심을 때는 딸아이도 함께 도왔다. 사실, 이 화단은 딸아이가 가꿀 화단이다. 가드너가 꿈이라는 딸을 위해 작은 시작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화단 디자인도, 꽃과 식물의 선정도 딸아이가 직접 했다. 아직은 손이 작고 어려서 노동을 시킬 수는 없지만 조금씩 일을 돕는 딸아이가 대견하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한 주 동안 파 모종이 잘 자라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읍내에 나가서 추가로 파를 50주 정도 더 사 왔고, 당근과 비트 씨앗도 사 왔다. 파는 심을 시기가 지나고 있어서 인지, 모종 가게 사장님이 10주를 서비스로 더 주었다.
모종도 모종이지만, 씨앗도 오히려 도시보다 저렴했다. 아무래도 이 곳이 더 수요가 많아서겠지?
파도 심고, 당근도 심고, 비트도 심고 나니 벌써부터 부자가 된 기분이다.
저녁에는 고기와 채소로 배를 채우고 동네 산책을 했다. 동네 산책 간에 만난 고양이 모녀의 애교와 장난 덕에 딸아이의 기분은 더욱 좋아졌다. 동네가 점점 편안하게 우리 가족에게 안기는 기분이 들었다.
일요일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려서 일찍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 오는 날에 아직은 할 일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쉽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뒤돌아 왔다.
다음 주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 또 다음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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