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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1. 주말농막 시작하기

intro. 주말 농막 시작 이유

by 팰럿Pallet 2022. 3. 27.

베란다와 주말을 채웠던 초록

시작의 이유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온 건 4년 전이다.

그 전과 달리 생각하게 되고, 경험한 공간을 꼽아 보라면, 단연 안방 쪽 베란다를 이야기하고 싶다.

 

2010년대에 지은 아파트라 그런지 층고가 꽤 높고, 그 높은 천장을 가진 베란다에는 그 전 아파트처럼 빨래를 걸 수 있는 천장형 빨래대도 없었다. 바닥은 타일로 깨끗했고, 세차에나 쓸법한 분무가 잘되는 샤워기형 분사기가 달려있는 수도꼭지가 하나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꽤 햇빛이 잘 드는 동남향이고, 창문을 조금 열면 바람도 꽤 상쾌하게 들어왔다.

 

이 베란다에서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아내가 제안했던 건 가든(garden)이었다. 처음엔 꽃과 식물을 키우는 걸로 시작했는데, 아내나 나나 모두 생산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았기에, 차차 먹을 수 있는 식물들. 그러니까 채소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누구나 도전하는 상추, 로메인, 방울토마토도 키워보고, 마트에서 사 온 대파를 먹고 뿌리 쪽을 잘라서 심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벌레나 진딧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허브류도 키우고, 조금씩 키우는 것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꽃, 식물, 나무, 채소가 어우러진 우리집 베란다

베란다에서 따먹는 토마토, 딸기 등은 딸내미에게도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었고, 따뜻한 햇살과 상쾌한 바람. 그리고 즐거움까지 가져다주는 베란다가 우리 가족에게는 소박한 행복 텃밭이었다.

 

그러다가, 시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드넓은 밭에서 쑥쑥 자라는 갖가지 채소들에 깜짝 놀랐다. 고추, 가지는 기본이고 호박, 당근, 수박, 옥수수, 감자, 고구마, 깻잎, 들깨, 딸기, 토마토 등 우리 집 베란다가 시골이라치면, 주말농장은 도시 같은 느낌이랄까.

 


다음 해에 우리는 아파트 뒤쪽 산 아래 운영되는 사설 주말텃밭을 한 구좌 계약했다. 산 골짜기 진 곳에 작은 오두막과 작은 텃밭들이 어우러진 그곳엔,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닭장도 있고, 오며 가며 딱따구리 모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텃밭에서 우리는 1년 동안 정말 다양한 작물을 심고, 키우고, 먹었다. 시작은 가족이 다 함께 했지만, 결국은 아내가 거의 도맡아서 텃밭을 관리했다.

주말농장 우리 밭. 2019년 9월

애정으로 키운 텃밭에는 단호박, 가지, 토마토가 풍성하게 열렸고, 어디서 굴러와 큰 지 모를 깻잎도 요긴하게 먹었다. 고수도 심어서 쌀국수도 해 먹고, 쑥갓을 키워 가락국수도 해 먹었다. 직접 키운 당근의 신선한 맛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뽑을 때의 오드득 쑤욱하는 그 느낌은 아직도 손 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날씨가 추워도 잘 자라던 시금치는 꼭 다시 키워야지 했던 작물이고, 로메인과 상추 덕분에 초록 가득한 식탁에 핑계처럼 고기를 올려대기도 했다. 때로는 이웃 텃밭에서 굴러온 감자를 보며 웃기도 했고, 뜻밖의 선물로 받았던 오골계 초란, 고급 상추(이름을 잊어버렸다)는 눈이 동그래지는 맛이었다.

 

이렇게 베란다로 시작하여 주말농장으로 이어진 우리 가족의 '초록 키워 먹기 놀이'는 요 근래 서로가 공감하는 가장 큰 행복이다.


내가 좋아하는 헨리 데이빗 소로가 쓴 책 월든(Walden)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삶을 놀이처럼 사는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명확하게 삶의 법칙과 관계를 인식한다. 어른들은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데 실패해놓고는 경험, 즉 실패를 겪으며 자신들이 더 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놀이처럼 산다는 게 뭘까? '놀이'라는 건 소유하는(have)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활동(activity)이다. 그 활동은 각자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이며, 결과이다.

 

반면에 어른에게 가치 있는 삶이란, '소유'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좋은 직장의 명함을 소유해야 하고, 안정된 가정을 소유해야 하고, 넓고 좋은 집과 멋진 차를 소유해야 가치 있는 삶을 이뤘다고 한다. 그러한 삶이 값어치 있다고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행복조차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과도 일치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일부 각색한 내용)

소유하려 하는 욕심으로 재산이나 관계를 채워가다 보면, 자주 좌절하게 되고, 그걸 딛고 일어나는 게 마치 성공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그런 성공을 갈구하는 사람 중에 평범한 하나이지만, 그래도 소유보다는 즐기는 활동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 정점에 있는 게 행복이 아니라, 정점을 향해 가는 과정과 정점에서 내려오는 과정. 즉 그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동과 활동에 만족하고 싶다.

 

프랑스의 회의론자이자 인문주의자였던 미셀 드 몽테뉴는 나의 이 구구절절한 설명을 한마디의 명언으로 정리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유이지 소유가 아니다

 

비약일 수 있지만, 그래서 난 이 '초록 키워 먹기 놀이'가 그 어느 배움이나 벌이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소중하다.

 

왜 이런 이야길 늘어놓았냐고?

왜냐면 이게 내가 양평에 농막을 짓게 된 계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재되는 글들은 제가 브런치 매거진에서 2020년 3월 22일부터 2년간 작성한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2022년부터는 브런치에서 연재하지 않고, 이 곳 티스토리에서 연재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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