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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1. 주말농막 시작하기

#19. 타프 설치와 쿠바식 틀밭 마무리

by 팰럿Pallet 2022. 4. 6.

2020.8.24

비 온 뒤 농막을 단장해봅니다


 

금요일 저녁까지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비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고, 주말의 날씨예보는 비. 비. 비였다. 기상청을 믿지 못해서 해외 기상청 서비스를 요즘 많이 이용한다던데.. 아내도 뒤질세라 미국과 노르웨이 기상청 정보까지 찾아본다.

토요일 오전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어차피 우리 월요일까지 쉬는데, 내일 갈까?"라는 이야기도 꺼내보았지만, 아내는 "비 오는 거 생각하면, 과연 갈 수 있을까?"

라며 계획을 틀지 않길 바랐다.

맞는 말이다. 비 온다, 덥다, 습하다 등등의 핑계를 댄다면 일 년에 몇 번이나 가겠는가. 그래 가자.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고속도로 바닥은 밤이 되어 더 까맣게 비에 젖어 있었다. 양평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비의 기세는 줄어들었고 결국은 맑은 하늘이 반기기 시작했다. "역시 기상청은 믿을게 못되구먼!" 하면서 한참을 달려 남양평 IC에 진입했을 때, 양평 방향에 드리우는 검은 구름의 기운.. 남양평 IC를 진입하기가 무섭게 내리는 빗줄기.

"괜찮아. 가서 쉬다 오면 되지, 여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몸도 별로 안 좋은데, 잡초나 좀 뽑고 쉬자."라고 아내를 다독였다. 

마음을 내려놓아서 일까. 양평의 한적한 시골길로 진입할 때 즈음 비도 그치고 하늘도 점점 맑게 게였다.

 

산안개, 물안개가 가득 피어오르는 풍광과 콸콸콸 넘쳐흐르는 계곡물의 모습은, 뉴스의 위협과는 달리 무척 아름답고 경이로워 보였다. (사진으로 모두 남기지 못한 게 아쉽다)

비온 뒤에는 산이 숨을 쉬는 것 같다

 

계곡으로 변신한 사방지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그간 가득 자란 잡초부터 하나하나 뽑아냈다. 아내는 텃밭 주변과 마당 주변의 잡초를. 나는 뒷마당과 사방지에서 올라온 잡초를 모두 뽑아냈다. 잡초를 뽑다 보면, 왜들 그렇게 작은 면적의 땅에도 예초기를 돌리고, 제초제를 뿌리는지 이해가 된다. 쭈그려 앉아서 작업을 하니 당장엔 엉덩이와 무릎이 저리고, 하루가 지나면 손목부터 허리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

'아, 이래서 시골에 땅을 살 때는 200평 미만으로 사라고 하는구나'

 

사방지 쪽의 잡초가 얼마나 무성한지, 덩굴들이 사방을 덮고 있었다. 제거하면서 사방지 아래쪽으로 내려갔는데, 그동안은 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던 곳이 계곡으로 바뀌어 콸콸콸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근처에 얼굴만 가져다 데어도 시원한 기운이 뿜어져 올라온다. 그 거침없는 물길이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좋은 피서지를 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작은 폭포도 생기고 깊은 웅덩이도 생겼다.

대단한 계곡은 아니지만, 부녀에겐 충분한 임시 계곡이 되었다.

 

일만 하러 온 게 아니니 즐겨볼까 하는 마음에 풀 제거를 하다 말고 딸내미를 불러와 한참 동안 물놀이를 했다. 딸내미도 처음에는 쭈빗쭈빗했지만, 오랜만에 하는 물놀이라 그런지 온몸이 다 젖어도 연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즐거움에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물놀이는 오후에도 몇 차례 이어졌다.

딸내미도 즐거웠는지 집에 돌아와서는 함께 했던 물놀이를 그림으로 그리자고 제안했다. 물놀이를 할 때도 즐거웠지만 오랜만에 딸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더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딸과 함께 그린 물놀이 추억

 

휴양지 느낌으로 타프를 쳐볼까

다음날 날이 개여서 미뤄뒀던 데크 타프 작업을 했다.

정면 데크 양쪽으로 방부목 기둥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주춧돌을 수평과 수직을 맞추고, 방부목도 세웠다. 방부목 길이는 적당한 사이즈를 잡아서 원형톱으로 절단을 했다.

 

근데 이 원형톱. 처음에 톱날 끼우는데 거의 30분 이상을 썼다. 어떻게 고정 나사를 빼는지 몰라서 10분.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면서 이리저리 만지는 걸 10분. 방법은 제대로 알았지만, 워낙 꽉 조여져 있는터라 낑낑거리며 풀어내는데 5분. 원형 톱날을 넣고 테스트하는데 5분.

 

남들은 쉽게 하는 일들도 처음 시작할 때는 참 어려운 일이다. 뭐든 '처음'인 게 많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다.

이렇게 타프 기둥을 설치하고, 미리 구매해 놨던 타프를 설치하고, 마무리로 방부목 기둥에 오일스테인도 바르니 그럴듯한 모습이 되었다.

처음에 설치해두고 너무 뿌듯했던 타프

너무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다음 주에는 잠깐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방수력 좋은 타프 위로 빗물이 가득 고이면서, 그 무게가 방부목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 주춧돌이 들리고 기둥도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래서 타프도 좀 경사지게 다시 설치하고,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중간에 아래쪽으로 기울어지게 줄을 추가로 설치했다.

빗물이 잘 빠질 수 있게 조정한 모습

 

이런 시행착오들. 짜증이 나거나 걱정이 생길 때도 있지만, 스스로 터득하고 있음에 뿌듯함을 느낀다.


쿠바식 틀밭도 마무리를 지으며

미뤄뒀던 틀밭 작업도 이번 주가 되어서야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더 미룰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가을 파종시기를 넘길 수 없었기에 비가 오더라도 서둘러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오후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었다. 틀밭 만드는 것 역시 딸의 도움이 컸다. 손목이 아파서 드릴조차 들기가 조금 힘들었는데, 드릴질을 본인이 하겠다고 자처했다. 다 만들어진 틀밭은 아내가 스테인을 바르고 햇볕에 말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아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오전에 읍내에서 사 온 무 씨앗을 뿌리고, 배추 모종을 심었다. 그리고 한랭사 천을 씌워서 벌레 피해를 미리 막아두었다.

틀밭을 마저 만들었다. 7개의 텃밭이 생겼다.

 

무와 배추를 심은 틀밭에는 한랭사를 씌웠다.

비가 많이 와서 채소들은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 하지만, 정원을 꾸미려 샀던 일부 꽃모종은 비실대거나, 녹아내렸다. 모든 게 처음부터 다 성공할 수는 없으니 아쉽지만 또 다른 작물과 모종에 도전해야겠다.


비가 올 때마다 뒷마당의 토사가 조금씩 흘러내려서 농막 기초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큰 돌들을 주워와서 농막 하단부 기초 보강작업도 했다. 작업 후에 엄청난 소나기가 내렸는데, 비가 내린 이후에도 흙이 쓸려내려가지 않아서 작업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토사가 흐르지 않게 하려고 잔디 씨는 많이 뿌렸는데, 너무 듬성듬성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일단은 기다려봐야지.

 

일하는 중에도 소나기와 가랑비, 굵은 빗줄기가 번갈아가며 내려서 작업은 오래 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농막에만 오면 쉬지 않고 뭔가를 계속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손이 많이 부어서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지금도 타자를 치는데 손가락에 통증이 심하다. 적당히 해야 하는데, 사무실에 일주일 내내 앉아 있다가 주말 동안 즐기는 노동은 정말 달콤하다.

 

어릴 때는 아버지 따라 논길 가는 것도 반갑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노동으로 흘리는 땀과 근육의 욱신거림이 좋다. 내가 흘린 노력은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고, 시행착오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시행착오가 또 하나의 추억이 되고, 조금씩 흙과 자연에 가까워지는 나를 만든다.


 

코로나 19로 나라가 시끄럽고, 어딘가 나가기조차 불안한 요즘. 내가 그런 통찰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의 작은 계획이 어쩌다 보니 이런 큰 자연과 나만의 공간에 주말을 선사해주었다. 평일 동안은 하루 종일 회의와 문서와 고민을 가득 안고 있다가, 주말이 되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일들 속에서 땀 흘리고 에너지를 쏟고 또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의 치유가 된다.

아침 해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앞으로 기후, 질병, 일, 생활이 어떻게 될지 누구도 예단할 수 없지만, 이 속에서 또 적응하고 지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각자의 돌파구를 잘 마련하는 게 필요한 시대이다. 나는 주말에는 초록이 가득한 생활을 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시작이 농막은 아니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거창한 돌파 수단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들을 조금씩 키워가고 거기서 조금 더 큰 싹을 틔워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이 시국도 극복해내고,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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